내 게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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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 프랑스 동성 커플이 한국을 떠난 이유... '사회적 합의'는 언제 끝나나 


 


한 쌍의 프랑스 커플이 한국을 떠났다. 나와 우정을 나누던 D와 P의 이야기다. 프랑스 다국적 기업에 재직 중인 P는 지난해 한국 지사로의 발령을 받아 파트너 D와 함께 파리를 떠나왔다. 전문직종에 종사하던 D는 하던 일을 포기했지만, 한국어를 배우고 나면 서울에서도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며 미래를 긍정했다. 이들은 한국에서 5년 이상 체류하며 아이를 이 새로운 땅에서 키우고 싶어 했다.

 

D와 P는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 '팍스'(PACS)를 통해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동성 커플이다. 2013년 동성결혼을 법제화한 프랑스는, 이와 별개로 팍스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1999년에 도입된 이 제도는 결혼하지 않은 동성/이성 커플에게도 법적인 부부와 똑같은 혜택을 보장한다. 한국에서도 '시민결합', '생활동반자법'이라는 명칭으로 이와 같은 제도의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들이 한국으로의 이민을 결정하며 가장 먼저 알아본 것은 단연 비자였다. 회사의 후원을 받아 노동 비자로 입국할 수 있었던 P와 달리 D는 학생 비자를 발급받아야 했다. 한국은 동성혼은 물론 사실혼 관계에도 법적 지위를 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성 파트너에게는 당연히 발급될 배우자 비자를 D는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여러 대안을 착실하게 준비하여 바라던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COVID-19와 비자 제도의 사각지대

 

코로나바이러스로 많은 이들의 삶의 행로가 바뀌었다. 예상치 못한 변화를 받아들인 이들 중에는 D와 P 커플 같은 성소수자들도 있다.

 

동성혼을 인정하는 본국에서 동성혼을 불인정하는 타국으로의 이주를 택한 커플들은 대개 파트너의 거주권을 공식적으로 보장받을 수 없다. 이들은 주로 3~6개월 단위로 발급되는 여행 비자를 갱신하는 것을 대안으로 삼는데, 여행 비자로 한국에 머물다가 일본 등의 인접국으로 출국한 뒤 다시 한국으로 입국하는 식이다. 안정적이지 못한 데다가 비용이 크게 소모되는 방법이지만, 동성 커플이 함께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코로나바이러스로 다니던 어학당 수업이 무기한 중단되자, D는 학생비자를 만료하고 여행 비자를 매번 갱신하는 대안으로 파트너와의 한국 생활을 이어가고자 했다. 그러나 각국의 국경이 닫히고 외교부가 여행비자 발급을 중단하자, 커플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한국에서의 체류의 적법성을 먼저 확보해야만, 아이를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데리고 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커플과 P의 회사는 가능한 방법을 총동원해 D가 한국에 체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그들이 공식적으로 받아든 답변은 '미안하지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 결국 타국에서의 모험보다 가정의 안정을 택한 그들은 짧았던 한국 생활을 뒤로하고 프랑스로 돌아갔다.

 

서구와 아시아의 인권 시차

 

이 커플의 사례는 결코 이례적이지 않다. 미주와 유럽권에서 아시아로 이주하는 동성 커플들의 사례가 국내에서 크게 가시화되지 않았을 뿐이다.

 

2019년엔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영국인 남성이 한국으로 이민 오며 자신의 배우자 비자를 인정해달라는 진정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제기했다(17-진정-0497700). 인권위는 이 진정을 각하하며 법무부에 재검토를 요구하지 않았다. 같은 해엔 일본인 남성과 결혼한 미국인 남성이 '이성애자 커플에게 주어지는 장기 체류 권리를 동성 커플에게도 인정하라'며 일본 정부를 고소하기도 했다.

 

이렇듯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는 국가에 체류하려는 외국인 동성 커플은 개인 차원에서 국가를 상대로 법적 결투를 벌여야 한다. 실제로 2014년부터 홍콩에서 벌어진 법적 다툼은 이민법 개정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홍콩인 여성과 결혼한 한 영국인 여성은 자신의 배우자 비자를 거부한 출입국 관리 당국을 고소해 2018년에 끝내 승소했다. 동성 커플의 배우자 비자를 불허하는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홍콩 최고법원의 판결 이후, 홍콩 입법회는 법을 개정했다. 이 결정은 홍콩 시민으로 구성된 동성 커플도 정부가 지원하는 '공공주택' 입주에 지원할 수 있다는 2020년의 결정으로 이어졌다. 동성혼 법제화를 아직 하지 못한 홍콩이지만, 이렇듯 단계적으로 성소수자의 권리를 법제화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 정부, '사회적 합의' 운운 말고 단계별 전략 세워야

 

앞서 언급한 홍콩 정부에 대한 레즈비언 커플의 소송 과정엔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 등 글로벌 회사가 공개적 지지에 나서기도 했다. 이들은 커플의 소송 비용을 지원하면서 최고의 인재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다양한 고용 관례들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비자 발급에서 성소수자 차별을 중단하는 것이 결국 자국 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다.

 

위 사례들은 후보 시절부터 동성혼에 대한 '사회적 합의' 운운하며 제도마련을 유보해온 문재인 정부에 경각심을 안긴다. 문 정부는 지난 2018년 필립 터너 주한 뉴질랜드 대사가 부임할 당시 그의 동성 배우자에 비자를 발급한 것을 계기로, 2019년부터 주한 외국 공관원의 동성 배우자를 법적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또한 지난 2016년 박근혜 정부는 주한미군의 동성 배우자에게도 '주한미군 주둔군지위협정(SOFA)' 상의 지위를 인정하기로 한 사실이 있다.

 

이렇듯 외교 상대국의 유무형적 '압박'은 동성혼을 불허하는 한국 및 아시아 국가에 성소수자 인권 법제화의 기반을 마련하기도 한다. 이제 문제는, 이에 한국 정부가 어떻게 응답하냐는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러한 조치들은 외교관의 면책 특권이나 상대국의 요청에 따른 '이례적 조치'라 선을 긋고, 국내의 성소수자 권리문제와 연결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최근 동성혼에 대한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지난해 11월이다. 문 대통령은 MBC 특집 '국민이 묻는다, 2019 국민과의 대화'에서 "원론적으로는 찬성을 하지만 동성혼 합법화 문제는 우리 사회가 아직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 말하며 '사회적 합의'라는 불분명함 뒤에 다시 한번 숨었다.

 

동성 커플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는 일은 물론 고된 과정이 될 것이다. 앞서 동성혼 법제화를 이뤄낸 나라들마저도 가지각색의 혼란을 겪고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2019년부터 결혼하지 않은 외교관 동성 동거인의 비자 발급을 제한했다. 이 정책은 올해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뜨거운 주제로 논의되기도 했다. 2019년 아시아 최초로 동성혼을 법제화한 대만 역시 다국적 커플의 법적 지위 허용 여부를 두고 지금까지도 갈등하고 있다. 유럽연합(EU)도 동성혼을 허용한 나라와 아닌 나라가 혼재하고 있는 탓에, 연합 내 이민법을 적용하는 방식을 두고 토론을 지속했다.

 

그렇기에 성소수자의 법적 권리를 인정하는 일을 '동성혼 법제화로의 직행'으로만 이해할 필요는 없다. 그러한 방식의 급진성이 정부로 하여금 '사회적 합의 필요'라는 변명을 지속하게 하고, 제도 도입 이후의 혼란을 가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경이 닫히고 서로가 서로에게 배타적으로 변한 국수주의 코로나 시대에 필요한 것은 어쩌면, 소수자 인권 운동을 통한 국제연대일 수 있다. 국경은 닫혀도 사랑은 지속되기 때문이다. 

KING